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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소설

『카인』(Cain), 주제 사라마구

『카인』(Cain), 주제 사라마구, 정영목 역

1. 들어가며...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생의 마지막 작품 『카인』(Cain)은 2009년 그의 나이 86세에 완성한 작품이다. 세계적인 문학가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중 으뜸은 단연,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예리한 문장의 칼은 인간의 ‘욕망’ 그 본질의 ‘악함’을 폭로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눈’을 뜬 사람인지 아니면, 눈이 ‘먼’ 사람인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사라마구의 예리함은 죽음을 가까이 둔 황혼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카인』이라는 마지막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뜨겁게 불태울 사라마구만의 탁월한 소재다.


2. 줄거리...
소설 『카인』은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곧 ‘카인과 아벨’에서 아우를 죽인 형 ‘카인’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다. ‘카인’ 이야기에 앞서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에덴동산에서 추방 되었는지 기존의 ‘해석’을 완전히 뒤집고 비틀며 이끌어 간다. 에덴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불 칼로 지키는 ‘천사’로부터 ‘과일’과 ‘불’을 얻어 새로운 삶의 여정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곧 새로운 생명이 탄생 하였는데 바로 ‘카인 과 아벨’이었다.


시간이 흘러 카인은 농부로, 아벨은 목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소출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린다. 그런데, 이 때 문제가 발생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나, 카인의 제사는 거부된 것이다. 처음 격는, 당혹감에 카인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 여겨 여러 번 다시 제사를 드린다. 하지만 모든 제사의 ‘연기’는 공중에서 흩어져 거부 됨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사라마구는 ‘아벨’이 형 ‘카인’을 향해 조롱 했을 것으로 묘사한다. 계속되는 제사의 거부로 부아가 치민 카인은 결국 동생 아벨을 나귀 턱뼈로 쳐 죽이고 만다. 돌이킬 수 없는 창세이례 첫 ‘살인’이 그것도 ‘형제’ 사이에 발생했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오랜 세월 자신들과는 ‘관계’없이 존재하던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항변’과 ‘분노’그리고 불쾌감을 드러낸다. 카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거부가 곧 자신이 ‘살인’을 행할 선택을 강요한 ‘책임’을 드러낸다. 카인은 자신의 ‘살인’ 앞에서도 하나님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권능’이 있었음에도 방관 했고 그 방관의 ‘책임’으로 ‘아벨’이 죽은 것이라 말한다.


카인의 항변을 들은 하나님은 ‘살인’의 결과로 세상을 유리하는 것과 이마에 ‘표’를 인 침으로, 세상과 자신에게 ‘증거’를 삼으신다. 하지만 이 ‘표’는 또 다른 ‘징표’가 된다. 바로 그 누구도 ‘아벨’의 생명을 멸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카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낯을 피하여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광야로 떠돌기 시작한다. 튜닉을 걸쳐 입은 카인이 향한 곳은 ‘놋’ 이었다.


놋 땅에서의 새로운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의 선언처럼 유리하는 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여기서 사라마구는 독특한 ‘구약 해석’의 새로운 방향을 보인다. 카인이 타고 다니는 ‘나귀’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에서 또 다른 ‘현재’(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현재)로 이동하면서, (1)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2)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3) 아브람과 사래가 아직 이삭을 낳기 전 천사들이 방문 할 때 (4) 욥이 고난당하기 전과 후 (5)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것과 아이 성 전투가 이루어지기 전 (6)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것과 홍수가 일어나 방주 안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막을 내린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고 홍수가 그친 시점에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지만, 노아의 가족의 생명은 이미 ‘카인’의 손과 선택된 강요(자살)에 사라진 다음이었다. 이 때, 카인은 ‘하나님’과 다시금 마주하고, 자신에게 ‘사망 선고’를 강요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마에 둔 ‘표’로 인해 카인의 생명을 거둘 수 없음을 시인한다. 결국 카인은 이 모든 것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며 하나님과 끝없는 ‘논쟁’을 이어가며 이야기가 사라진다.


3. 무엇을 말하는가?
소설 『카인』을 읽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상당한 ‘불쾌함’에 휩싸여 읽는 동안 마음이 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카인’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악함’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그와 마주하는 ‘하나님’의 미적지근한 태도와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는 ‘천사’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기존의 ‘기독교’가 해석하고 있는 ‘성경’의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평가절하 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주제 사라마구’가 왜 이렇게 불편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가? 를 질문하게 된다. 그가 보여주는 ‘불경함’(불온함)은, 사실 주인공 ‘카인’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핵심’이다. ‘인간’ 카인은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불만 그리고 적의를 품고 대항하는 최초 ‘악인’의 전형을 보인다. 그에 눈과 발걸음에는 모든 것이 비틀어지고 불편하며 불합리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적의’는 결국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절규 같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경향성’(죄를 향한 경향성)을 폭로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해석이 존재한다. 앞선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눈먼’ 카인의 처음과 끝은 동일한 ‘악’을 거듭 드러낼 뿐이다. 프랑스판과 한국어 판의 표지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의 <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카인’은 자신이 불합리한 하나님의 무책임의 결과로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아벨이 아니라 자신이 ‘희생양’이라고 말이다(물론, 출판사의 의도와 작가의 의도가 우선이지만...독자로 개연성을 살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코 어렵고 두껍지 않으며, 지루하지도 않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카인』은 더 이상 볼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그의 마지막 역작으로써, 황혼의 열정으로 값진 선물이 된다. ‘현실’과 ‘현실’(미래의 현실)을 넘나드는 요소는 C.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을 기억하도록 한다. 이제 어서 빨리, 이 책 『카인』을 읽어보길 바란다. 빨간책과 같은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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